신용회복경험담
환자도 가족도, 늘 누군가를 먼저 챙겼던 나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0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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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환자도 가족도, 늘 누군가를 먼저 챙겼던 나
저는 올해 36살,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입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워킹맘이기도 하죠. 병동에서 근무하는 저는 늘 긴장된 환경 속에서 일하지만, 퇴근 후 아이들 웃는 얼굴을 보면 그 피로가 조금은 풀리곤 했습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엔 그럭저럭 괜찮은 삶처럼 보였을 거예요. 안정적인 직장, 아이들, 남편, 그리고 몇 년 전 계약한 고급 SUV까지. 그 차를 살 때는 가족 여행을 더 편안하게 다니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스스로를 위한 보상이기도 했죠.
2. 전개: 내 생활을 삼킨 고급차 한 대
하지만 문제는 그 차가 저희 수입에 비해 지나치게 고가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월 리스료만 약 75만 원, 보험료와 유지비까지 포함하면 매달 100만 원 이상이 나갔죠. 처음 몇 달은 맞춰나갔습니다. 하지만 남편 사업이 잠시 주춤하고, 아이들 교육비가 늘어나면서 차 유지비가 점점 부담이 됐어요.
결국 리스비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연체가 쌓이자 카드사 현금서비스와 리볼빙으로 막았고, 그렇게 2년 만에 빚은 5,500만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리스회사, 카드사 두 곳에서 빚 독촉 전화가 하루에도 몇 통씩 오기 시작했고, 휴대폰 벨소리에 가슴이 철렁하던 시기가 길었습니다.
아이들 간식 하나 사는 것도 카드 결제를 망설이게 됐고, 어느 순간 남편 몰래 리스차를 팔 생각까지 했던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3. 위기: 아이 말 한마디에 무너진 자존심
결정적인 순간은 초등학교 1학년 딸이 제게 이런 말을 했을 때였습니다.
“엄마는 요즘 맨날 화나 있지? 왜 그래?”
그 말에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제가 짜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죠.
며칠 밤을 고민하다가, 병원 선배에게 어렵게 털어놓았더니 “나도 예전에 개인회생 했었어. 괜히 부끄러워하지 마”라는 의외의 말을 들었습니다. 놀라기도 했지만, 그 말이 큰 용기가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개인회생 상담을 받기로 했고,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4. 해결: 무너진 일상에 ‘질서’를 되찾다
상담을 받은 후 신청서를 준비하는 데 약 2주 정도 걸렸고, 접수 후에는 약 2개월 만에 개시 결정, 그리고 추가 3개월 후 인가 결정까지 받았습니다. 전체적으로 5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법원에 출석하던 날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괜히 부끄럽고 긴장이 됐죠. 하지만 판사님께서 절 쳐다보시며 “성실히 상환하시면 충분히 회복 가능합니다”라고 말해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인가된 변제계획은 월 19만 원씩 36개월, 총 3년간 납부하는 것이었고, 이후 나머지 채무는 법적으로 면책받는 구조였습니다. 큰 짐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더 이상 연체 없이 계획적으로 갚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힘든 날도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병원비나 아이들 학교 행사비 등은 항상 변수였죠. 하지만 가족과 솔직하게 대화하고, 월 예산표를 철저히 짜면서 조금씩 균형을 찾아갔습니다.
5. 결말: 조금은 천천히, 더 단단하게 살아가는 중
지금은 변제 14개월째입니다. 변제금은 매달 빠져나가지만, 이제는 그게 불안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리스차는 정리했고, 지금은 중고차로 아이들과 조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아요. 저 역시 ‘엄마답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다시 예전처럼 가족과 소소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주말에는 도시락 싸서 공원에 가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채무는 감출수록 더 깊어지고, 회생은 숨지 않아도 되는 길입니다.
저처럼 감정적으로 결정했던 소비를 후회하는 분들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지금이라도 용기 내어 상담받고, 스스로의 삶을 되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