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한밤중 병동에서 숨죽여 울던 날, 회생의 길을 찾았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4.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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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누구보다 평범했던 나의 삶
저는 올해 36살,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이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남편과는 맞벌이 부부로서 늘 분주하게 살았습니다. 낮에는 병원, 퇴근하면 곧장 아이들 챙기고 집안일 하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죠.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았지만, 큰 빚 없이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아이들 건강히 키우고, 언젠가 제주도로 가족 여행 가보는 거였죠.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생긴 건, 예상치 못한 ‘도박’이었습니다.
2. 전개: 스트레스를 풀던 방법이 덫이 되기까지
간호사라는 직업은 체력도 정신력도 많이 소모됩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 병동의 분위기는 살얼음판 같았고,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기분이 들 때도 많았죠. 그런 날, 우연히 동료가 보여준 스포츠토토 앱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만원만 해봐, 재밌어”라는 말에 시작한 것이 처음이었어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엔 소소한 재미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퇴근길마다 배당률을 확인했고, 남편과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 몰래 카지노 앱에 접속하곤 했습니다. 수익이 생겼을 땐 짜릿했고, 잃었을 땐 복구 욕심에 더 큰 금액을 걸었습니다.
문제는 대출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처음엔 저축은행, 그다음엔 대부업체 3곳까지. 그렇게 2년 8개월 만에 빚은 6,500만 원까지 불어났고, 월 이자만 80만 원 이상. 남편 몰래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돌리다 결국 카드 연체가 시작됐습니다.
3. 위기: 마주하기 싫었던 진실, 드러난 순간
모든 게 들통난 건, 남편이 우연히 제 문자 메시지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연체금 납부를 요청드립니다"라는 문자를 본 순간, 그는 아무 말 없이 저를 바라봤습니다. 그날 밤, 저는 아이들 방에 불이 꺼지고 나서야 입을 열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모든 걸 털어놨습니다.
남편은 충격을 받았지만, 생각보다 저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단호하게 말했죠. “이제라도 제대로 해결하자.” 그렇게 우리는 함께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상담 예약 버튼을 누르기가 어려웠지만, 더 이상 숨을 곳도 없었죠.
4. 해결: 무너진 마음을 세우는 4개월의 시간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소득은 간호사 월급 약 340만 원, 지출을 따져 변제계획이 수립됐고 월 48만 원씩 3년간 갚는 것으로 확정됐습니다.
중요했던 건 도박으로 인한 채무도 ‘회생이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단, 진심 어린 반성과 재발 방지 노력이 입증되어야 했죠. 저는 도박 중단 후 자발적으로 관련 앱 삭제, 가족 계좌 공동관리, 심리상담을 병행했고, 이 모든 내용을 사실대로 제출했습니다.
법원 출석 때는 심장이 너무 뛰어서 손에 땀이 날 정도였지만, 판사님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눈물이 났습니다. 단순히 빚을 줄이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5. 결말: 다시 엄마이자 간호사로, 한 사람으로
현재는 개인회생 인가 후 1년째입니다. 매달 변제금을 성실히 내고 있고, 소비도 훨씬 절제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엔 스트레스를 소비로 풀었다면, 지금은 가족과 대화하거나 운동을 하며 감정을 정리합니다.
남편도 여전히 곁에 있어주고, 아이들도 밝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직도 카드 쓰는 게 두렵긴 하지만, 그 덕분에 진짜 필요한 것이 뭔지를 더 잘 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저처럼 도박으로 빚을 지고, 어떻게든 감추며 살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숨기지 마세요. 혼자 견디려 하지 마세요. 개인회생은 실패의 낙인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저처럼 엄마이고, 아내이고, 직장인이면서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설 수 있습니다. 반드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