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5.21 17:22

자녀를 위한 선택이 무게가 될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

  • 최고관리자 3일 전 2025.05.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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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약 15%)

공직에 몸담은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어느덧 마흔여섯, 시청의 한 부서에서 꾸준히 근무해왔고, 두 아이와 아내와 함께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해왔습니다. 자산이 많지는 않았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과 성실한 생활습관 덕분에 큰 걱정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죠.

첫째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유학을 꿈꾸기 시작했을 때, 가족 모두 함께 고민했습니다. ‘해외 대학 진학’이라는 말을 처음 꺼냈을 때 솔직히 망설였지만,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결국 결심했고, 부족한 부분은 대출로 메웠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약 25%)

해외 유학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학비뿐 아니라 생활비, 항공료, 기숙사비 등등. 처음엔 은행에서 5천만 원을 학자금 명목으로 대출받았고, 추가로 카드사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해 생활비까지 충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무원이란 직업 덕분에 신용은 유지됐지만, 통장은 늘 마이너스였고, 아내와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감수하자’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선 무력함과 후회가 커져갔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약 20%)

결정적인 계기는 둘째 아이의 대학 입시비용이었습니다. 첫째에 쏟아부은 재정으로 이미 여유가 없던 차에, 둘째까지 본격적인 지출이 시작되자 현실적으로 막다른 길에 다다랐습니다.

며칠을 잠 못 이루며 고민했습니다. 이 길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내가 뭔가 잘못 판단한 건 아닐까… 직장에서 실적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고, 늘 불안한 마음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결국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놨고, 그 친구가 “개인회생이라는 제도가 요즘은 일반 직장인도 이용하는 제도”라며 조심스럽게 조언을 해줬습니다. 처음엔 ‘내가 그런 걸 해야 하나’라는 자존심이 컸지만, 더는 가족에게 무게를 지게 할 수 없었습니다.

상담을 받으러 가던 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공무원으로 평생 살아왔는데, 내 이름으로 ‘회생’이라는 단어를 접한다는 게 어딘가 실패자처럼 느껴졌거든요.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약 25%)

상담은 생각보다 간단했고, 제 상황에 맞는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류 준비와 법원 신청까지는 약 1개월 반, 이후 인가 결정까지 총 약 4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법원은 제 소득(공무원 급여)과 부양가족, 생활비 등을 고려해 월 48만 원씩 3년간(36개월) 변제하는 계획을 승인해줬습니다. 남은 채무는 일정 기간 이후 면책되도록 구성됐죠.

법원 출석은 한 번이었고, 담담하게 진행됐습니다. 심사위원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책임지기 위한 절차”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이런 상황까지 오다니’ 싶었지만, 변제 계획이 시작되면서 다시 일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통장 관리부터 소비 습관까지 다시 돌아봤고, 가족과도 조금씩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약 15%)

현재는 변제 시작 1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매달 성실히 납부하고 있고, 생활비도 절약하며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도 회복 중이고, 아이들도 제 선택을 이해해줬습니다.

무엇보다 ‘정상 궤도 위에 다시 올라섰다’는 느낌이 큽니다. 다시 신뢰를 회복해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만큼 소중하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 저처럼 가족을 위해 무리한 선택을 했던 분, 지금 그 무게에 눌려 계시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도망이 아니라 책임을 위한 선택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다시 살아갈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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